그러려면 살자(생활 TIP)

일상에서 힘을 주는, 추천하고 싶은 글

먹놀사 1호 2024. 11. 16. 23:22

 

이해하기 힘들지만, 밖에서 보기에 별 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 듯, 보잘 것 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있게 만든다.

─울산지방법원 2019. 12. 4. 선고 2019고합241 판결 中

 
여러분은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글이 있으신가요?
보통 '기억에 남는 글'이라 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떤 글은 그냥 예뻐서, 어떤 글은 그냥 잘 써서, 어떤 글은 유독 공감이 돼서, 어떤 글은 힘이 돼서…….
각자의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요.

오늘은 먹놀사 1호가 힘을 받기 위해 한때 자주 들여다봤던 글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되도록 책이 아닌, 인터넷에서 무료로 전문을 감상할 수 있는 글을 골라왔습니다.
 
 
 

어떤 양형 이유

울산지방법원 2019. 12. 4. 선고 2019고합241 판결 (클릭)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판매 페이지

 

세상이 부조리하고 엉망진창임에도 우리가 미련스럽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무릇 모든 숨탄 것들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살고 싶다. 그 절대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고통이, 이처럼 자주, 이처럼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생활고로, 우울증으로 세상에서 고립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잘 살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삶과 죽음은 불가해한 것이다. 어스름한 미명과 노을이 아름다워서, 누군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껏 버텨온 자신이 불쌍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박주영 판사님의 판결문 중 유명한 판결문의 일부입니다.
'어떤 양형 이유'라는 소제목은 판사님의 책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정작 저도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이 판결문을 읽어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불멸의 인간 정신에 바치는 헌사

불멸의 인간 정신에 바치는 헌사, ‘거장과 마르가리타’[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문학] (클릭)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판매 페이지

 

악마가 거장에게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하자 거장은 당혹스러워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소설을 페치카에 태워버렸습니다.” 악마가 실소한다. “실례지만 그 말은 못 믿겠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 원고는 불타지 않소. 베헤모트, 소설을 이리 가져와.” 그러자 기적처럼 온전히 보존된 거장의 원고가 즉시 눈앞에 나타난다.
거장의 스토리는 불가코프의 전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는 거장처럼 정권의 박해 속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초고를 1930년에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에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해 두 번째 초고를 1936년에 완성했다.
우리는 날마다 삶의 백지에 작은 글씨 하나씩을 새기며 살아간다. 보통 사람이 거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인 우리가 고통을 감수하며, 넘어져 가며, 실수를 통해 배워 가며 전 존재로서 삶에 투신할 때 우리의 하루는 위대한 기록이 된다. 우리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불타지 않는 원고가 된다. 불가코프는 결국 문학 작품의 불멸을 넘어 헌신, 용기, 기억으로 추동되는 인간 정신의 불멸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소설은 그가 우리 모두의 위대한 흔적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지 않았다고 해도 책에 대한 흥미를 돋워주는 칼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마지막 소제목인 '삶이란 불멸의 기록'과 마지막 문단이 유독 기억에 남는 글입니다.
우리 모두의 포스팅도, 기록되지 않은 삶도, 위대한 흔적으로 남고 있을까요?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누구의 허락도 구한 적 없다"

"나는 나로 살기 위해 누구의 허락도 구한 적 없다" (클릭)
 

세 번째 연인 질로는 달랐다. 그는 "너는 내게 작업실 먼지 만큼이나 하찮은 존재"라던 피카소의 말에 "나는 결코 쓸려나가지 않고 내가 원할 때 스스로 떠날 먼지"라고 반박할 만큼 당찼다.
"나는 죄수였던 적이 없다. 머문 것도 떠난 것도 모두 내 의지였다"
"나는 나로서 살기 위해 누구의 허락도 구한 적 없다."

 
 
'프랑수아즈 질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읽었던 칼럼입니다.
인용만으로도 그의 삶이 궁금해지셨다면, 읽어보시는 건 어떤가요?
 
 
 
 


 
가끔 누군가의 글을 통해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힘이 될 만한 문장을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아가실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우리가 우리로 살아가는 데에 누군가의 허락을 구할 이유는 없고,
그렇게 새겨질 우리의 날들은 불타지 않을 원고가 될 테니까요.
이 글이 혼잣말이 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AI 블친님들~